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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만한 이야기와......

솔방울, 작고 단단한 절규

by shanim 2025.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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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방울, 작고 단단한 절규


소나무에 달린 수백 여 개의 솔방울을 본 적 있나요?
그 작고 단단한 열매들이 가지마다 아웅다웅 매달린 모습을 말입니다.
처음엔 그냥 ‘많다’ 싶었을 뿐인데, 다시 보니 그건 무언가 절실한 외침처럼 보입니다.
도대체, 저 나무는 왜 이토록 많은 솔방울 품고 있는 걸까요?


남산 한옥마을.
고즈넉한 기와지붕 아래, 세월을 고요히 품은 담벼락이 늘어선 그 길목엔
늘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솔향 가득한 숲길이 아니다 보니,
그 나무들을 '자연'이라 부르기엔 조금 어색하죠.
사방은 콘크리트, 발아래엔 정갈하게 다듬어진 보도블록,
그리고 그 속에서 근근이 뿌리를 내린 나무들.

그 나무를 우연히 올려다본 건, 흐린 퇴근길 오후였습니다.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아래,
한 소나무에 빼곡히 매달린 솔방울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 주먹만 한 것에서부터, 마른 감꽃처럼 쪼그라든 조막만 한 송이들까지.
그것들은 가지마다 터질 듯 매달려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울 만큼 많았습니다.
어쩌면 저건 병이 아닐까?
아니면, 자연의 과잉인가?
하지만 더 들여다보니 그건 본능이었습니다.
삶을 이어가야겠다는, 단순하지만 간절한 소명.

그 나무는, 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곳은 이미 인간의 세계였으니까요.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는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생존은 종종 체념을 가장한 투쟁의 다른 이름입니다.
남산의 소나무는, 조용히 그러나 자신만의 방법대로 맹렬하게 투쟁 중이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몸,
누구도 돌보지 않는 뿌리,
그러니 모든 가능성을 솔방울 속에 담는 겁니다.
단 한 알의 씨앗이라도 바람을 타고 가 닿기를 바라는 그 절박함.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이상해졌습니다.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어요.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는 친구,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보따리를 늘어놓고 잠든 노숙자,
오늘도 주어진 하루를 채우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버틴 나.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버리며 살아갑니다.
꿈을, 여유를, 자존심을.
이렇게 하루하루를 붙잡으며 살아가는 우리 삶도,
그 소나무의 솔방울처럼 절박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소나무는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몸 위에 수십 개의 작고 단단한 열매를 달아
우리에게 보여주기만 할 뿐입니다.

“살아내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도 살아내야 해. 그러니 나는 오늘도,
이 조그만 씨앗들을 바람에 올린다”

솔방울 하나, 굴러내립니다.
누군가의 발에 채이더라도, 그것은 그 나무의 작은 희망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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