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하루에 문을 열어준 적 있나요?”
거리는 언제나처럼 바빴습니다. 누가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발걸음만 빠르게 오가던 아침. 퇴색된 벽처럼 흐릿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죠.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화요일 아침, 회색빛 건물과 고요한 하늘 사이로, 무심한 하루가 시작되는 줄 알았습니다.
출근길에 늘 지나치던 사거리. 버스에서 내려 신호등 앞으로 걷던 중, 길가 인도 끝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어깨에 걸친 가방보다 훨씬 더 조심스러운 자세.
하얀 지팡이가 땅을 천천히 더듬고 있었고,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주변의 소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몸.
나는 그 옆을 그냥 지나치려다, 인도 턱 앞에서 멈췄습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혹시, 아직 빨간불인가요?”
낯선 물음이었지만, 어쩐지 낯익은 온도였습니다.
나는 짧게 “네, 조금만 기다리면 돼요”라고 답했죠.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리는 일은 늘 익숙한데… 누군가 대답해주는 건, 참 드문 일이네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맴돌았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장.
누군가에게 ‘대답’은 그저 소통이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신호였던 겁니다.
신호가 바뀌었고, 나도 그와 함께 길을 건넜습니다.
별말 없이, 천천히.
20초 남짓한 거리였지만, 시간이 이상하게 느리게 흘렀습니다.
길을 다 건넜을 때, 그가 고개를 조금 숙이며 말했습니다.
“같이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냥, 오늘도 혼자인 줄 알았거든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뭔가 더 말을 보태면, 그 조용했던 20초가 부서질 것 같았습니다.
그는 다시 조용히 걸어갔고, 나는 뒤에서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차가운 아침 공기 사이에, 이상하게도 따뜻한 게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건네는 인사조차 조심스럽게 준비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평범한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여는 문일지도 모르니까요.
'손바닥 만한 이야기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치의 복수, 고양이의 퇴장🐾 (1) | 2025.06.19 |
---|---|
소의 눈물, 그날의 울음 (3) | 2025.06.18 |
줄탁동시(啐啄同時), 그날의 막걸리잔 🍶 (0) | 2025.06.14 |
당신의 이름으로 온 마지막 문자 (0) | 2025.06.13 |
누나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 (3) | 2025.06.13 |